BTS RM도 좋아하는 日 ‘스타 미술가’…그가 ‘농촌도시’ 고향서 대형전시 연 까닭은?
입력 : 2023-12-09 08:00
수정 : 2023-12-18 17:08
나라 요시토모, 작가생활 40주년 기념해
고향 日 아오모리서 ‘비기닝 플레이스’전
회화·조각·사진·목조건물 등 200여점 전시
‘팝아트’ 넘어선 작가 인생사와 내면까지 포착 
3만명 방문…내년부터 韓 직항으로 관람 가능

큰 눈에 순수함과 반항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큰 머리 소녀’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일본 미술가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 2000년에 그린 ‘등 뒤에 품은 칼(Knife behind Back)’이 2019년 10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1억9570만홍콩달러(290억원)에 입찰되며 아시아 생존작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나라는 국내 미술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다. 2005년 첫 한국 개인전인 ‘내 서랍속 깊은 곳(From the Depth of My Drawers)’에 이어, 올 9~10월엔 도예작품 전시인 ‘세라믹 웍스(Yoshitomo Nara:Ceramic Works)’로 1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특히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이 전시를 관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외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2만4583명이 다녀가기도 했다. 

그는 고향인 일본 본섬(혼슈) 최북단인 아오모리현에서 자신의 작가생활 4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을 열고 있다. 아오모리현립미술관에서 개최중인 ‘나라 요시토모:더 비기닝 플레이스, 여기서부터(奈良美智: The Beginning Place ここから)’가 바로 그것. 내년 2월25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지난 10월14일 시작, 관람객 3만명을 돌파했다. 

Second alt text
 뉸속에서도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 아오모리현립미술관 트위터

아오모리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호설지역’으로, 연간 적설량 600㎝에 최대 적설량도 149㎝에 달한다.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일본 최대 사과·마늘 주산지이자 ‘논 아트’의 발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현재까지 일본 입국 후 고속철도 혹은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하지만 내년 1월20일부터는 코로나19로 약 4년간 중단됐던 인천-아오모리 직항편 운항이 재개될 예정이어서 설경과 함께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다카하시 시게미 아오모리현립미술관 학예주간은 “이번 전시는 나라 요시토모가 고향에서 11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라면서 “200여점의 작품을 통해 작가의 청소년기부터 현재까지를 되돌아보는 것은 물론,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자신의 뿌리에 집중한 변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한국 관람객들의 관심을 부탁했다.

▲집 ▲시공(時空)의 퇴적층 ▲여행 ▲NO WAR(전쟁 반대) ▲록카페 33 ⅓과 작은 공동체 등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5가지 주제를 소개한다.

 

1. 집

image
후타바 하우스(Futaba(떡잎) House·1984년)(왼쪽부터), 빗방울을 기다리며(Waiting for Rain Drops·〃), 화재(Fire·2009년).

‘사과와 벚꽃의 고장’으로 알려진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에서 나고 자란 나라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언덕에 홀로 떨어져 있었다. 도쿄로 상경한 이후부터 독일 유학시절 사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집은 ‘극복의 대상’에 가깝다. 새싹이 돋아나거나 불타고 부서지는 집들에선 끝까지 자신의 화풍을 찾아내려는 치열한 노력이 엿보인다. 결국 집은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로 자리잡았고, 평면을 넘어 수많은 전시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목조 작업실 혹은 오두막 같은 설치작품으로 확장됐다.

Second alt text
카쵸가 있는 풍경(1979년).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카쵸가 있는 풍경’이다. 잠시 도쿄 무사시노 미대에 재학했던 1979년에 그린 유화로,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폭풍을 막는 나무 울타리인 ‘카쵸’가 둘러쳐진 한산한 일본 북부의 마을 길가를 혼자 걷는 여성이 그려져 있다. 재활용 캔버스 더미에 묻혀 자칫 버려질뻔 했던 그림이었지만, 나라의 제자 중 하나인 스기토 히로시(杉戸洋·현 도쿄예술대 교수)가 찾아내 간직해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 시공(時空)의 적층(積層)

Second alt text
미드나잇 티어즈(Midnight Tears, 한밤중 흐르는 눈물. 2023년). 가로 225㎝, 세로 240㎝인 대형작품이다.

‘소녀’를 가장 주된 소재로 삼아온 나라의 작품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이등신 소녀’를 주로 그려왔던 그는 동일본대지진을 분기점으로 ‘증명사진’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얼굴과 상반신 일부만을 그린 대형 작품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드나잇 티어즈(Midnight Tears·한밤중 흐르는 눈물)’에서 그 특징이 더욱 부각된다. 가로 225㎝, 세로 240㎝에 달하는 이 대형작품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색을 겹쳐 쌓아올린 색깔의 층이 깊이를 더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눈물이 쏟아질 듯한 커다란 눈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벤치에 앉아 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 

 

3. 여행

Second alt text
‘토비우 아이들’ 연작(2017년). 홋카이도 토비우(飛生) 지역의 나뭇가지로 만든 목탄으로, 동네 소녀들을 실물 크기로 그렸다.

나라 요시토모를 정의하는 단어 중 하나는 ‘여행’이다. 동일본대지진 이후인 2014년 떠난 사할린 여행은 ‘뿌리찾기’와 일본 북부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홋카이도 지역을 찾아 다양한 그림·사진·조각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여행은 유럽·미국 등은 물론 아프가니스탄·시리아 등 분쟁지역까지 광범위하다.

 

4. 전쟁 반대(NO WAR)

Second alt text
봄소녀(春少女·Miss Spring, 2012년). 이번 전시에는 실제 크기의 현수막이 걸렸다.

나라가 자란 아오모리현에는 美 공군기지, 핵처리시설 등이 있다. 이런 배경에서 자란 그의 성장기는 베트남 전쟁과 맞닿아 있다. 당시 직접 조립한 라디오로 미군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는 60·70년대 포크와 록음악, 그중에서도 밥 딜런과 닐 영 등의 음악은 그에게 ‘반전’ ‘평화’ 등의 사상을 심어줬다. ‘봄소녀(春少女·Miss Spring)’와 ‘NO NUKES(반핵)’ 등 그의 작품은 일본 내 반핵운동시위에서 플래카드 등으로 널리 활용되기도 했다. 

Second alt text
평화의 제단(Altar of Peace,2023년). 자신의 각종 작품과 장난감 등으로 구성했다.

그가 꿈꾸는 세계는 ‘사랑·평화·음악’으로 요약된다. 자신의 그림·도자기와 아트토이(장난감), 팬들이 보내온 인형 등으로 꾸민 설치작품 ‘평화의 제단’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5. 록카페 33 ⅓(33과 3분의1)과 작은 공동체 

Second alt text
 고교시절 만들었던 '록카페 33 ⅓’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목조건물(2023년). 실제 건물은 1980년대 철거됐다.

점심값 모아 레코드판(LP음반) 사고, 음반 표지그림으로 미술에 눈떴던 ‘열혈 음악청년’ 나라. 그는 고교 3학년이던 1977년, 싱어송라이터인 동네 형의 제안으로 아파트 차고를 개조해 ‘제일하우스 33 ⅓’라는 록카페를 만들었다. LP음반의 1분당 회전수인 33.3333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 ‘제일하우스 록(Jailhouse Rock)’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는 이곳이 자신에게 예술과 ‘직접 해보기(DIY)’ 정신을 길러준 ‘시작의 장소(비기닝 플레이스)’였다고 말한다. 의자 하나까지 직접 만든 록카페에서 음반을 틀고,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역 청년들과 교류하며 유대감을 키웠다. 

이번 전시에는 록카페 안팎을 그대로 재현한 목조건물이 세워졌다. 당시 카페에서 틀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나라가 고교시절 직접 그린 카페 홍보물, 당시 동네 청년들의 모습까지 세세히 볼 수 있다.

일본 아오모리=류수연 기자

 

 

전시 관련 Q&A

 ‘나라 요시토모:더 비기닝 플레이스, 여기서부터(奈良美智: The Beginning Place ここから)’ 전시를 기획한 다카하시 시게미 아오모리현립미술관 학예주간에게 이번 전시와 미술관에 관련된 궁금증을 물어봤다. 

Second alt text
눈모자를 쓴 아오모리개. 높이 8.5m, 가로 6.7m에 달하는 대형 콘크리트로 2005년 만들어졌다. 사진은 2013년 모습. 아오모리현립미술관

Q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라는데, 몇점이나 되나요.

A 미술관 완공 이전인 1998년부터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을 수집, 드로잉 등을 포함해 170점이 넘는 작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라 요시토모 상설 전시와 함께 대형 입체작품인 아오모리 개 (아오모리켄·靑森犬, 2005년)와 ‘미스 포레스트’로도 불리는 숲소녀(Miss Forest·森子, 2016년) 의 야외설치 등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나라 요시토모의 활동과 함께해왔습니다. 

 

Q 본지는 일본의 고향납세에 착안, ‘고향사랑기부제’ 도입을 주창했고, 올해부터 제도가 본격 시행됐습니다. 아오모리현에선 답례품으로 이번 전시회 관람표나 전시회 기념품(굿즈)를 내놓으실 계획이 있나요.

A 지방소멸은 일본, 저희 지역에서도 심각한 해결과제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 박물관의 활동은 아오모리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력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이번 전람회의 티켓이나 나라 요시토모의 상품을 고향납세 답례품으로 하는 계획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내년부터 지역 내 5개 미술관들의 협력사업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그중 세곳은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들을 영구전시하고 있어 아오모리현을 찾는 현대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을 걸로 기대합니다. 내년 1월부터 직항편이 재개되니 한국 팬들도 많이 와주십시오.

 

Second alt text
아오모리현립미술관의 상징이기도 한 샤갈의 ‘알레코’ 무대배경 그림. 사진은 1막 배경 ‘달빛 속의 알레코와 젬피라’

Q 그밖에 추천해주실 작품들이 있다면.

A 저희 미술관은 아오모리현과 연고가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 수집에 힘써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아오모리개와 미스 포레스트는 꼭 보셔야 합니다. 또한 일본을 대표하는 목판화가 무나카타 시코(棟方志功), 영화 ‘울트라맨’ 시리즈의 괴수와 히어로를 디자인한 나리타 토오루(成田亨) 등 지역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도 많습니다.

건물 중앙홀에 걸린 마르크 샤갈의 ‘알레코’ 그림은 놓쳐선 안됩니다. 천장 높이가 20m에 달하는 대형 공간에서 발레공연 ‘알레코’의 배경으로 쓰인 4점의 대형 샤갈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조명쇼는 저희 미술관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건축가 아오키 준(青木淳)이 설계한 미술관 건물 역시 작품입니다. 미술관 인근에 있는 조몬시대(일본의 대표적인 고대문명) 유적인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의 발굴현장에서 착상을 얻어 디자인된 매우 독특한 공간입니다.

Second alt text
다카하시 시게미 아오모리현립미술관 학예주간

일본 아오모리=류수연 기자 capa74@nongmin.com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