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납세 지정기부 효과 뚜렷한데…
입력 : 2023-08-08 17:36
수정 : 2023-08-09 05:44
일본의 성공가도에 크게 공헌
공감가능 사업으로 동참 유도
일부 한국 지자체, 속속 시도
정부는 민간 플랫폼 활용 제동

일본 고향납세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매력적인 사업을 발굴해 기부를 유도하는 지정기부제가 일조했다는 평이 나온다. 한국에서도 저조한 고향사랑기부제(고향기부제) 흥행 실적을 지정기부제로 만회해보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문제는 정부가 사실상 제동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 총무성이 공개한 ‘고향납세 현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모금 실적은 9654억1000만엔을 기록했다. 2021년 8302억4000만엔을 훌쩍 뛰어넘어 1조엔 달성을 눈앞에 뒀다.

이런 성공 배경에 지정기부제가 있다. 지정기부제란 지자체가 발굴한 사업 중 기부자가 원하는 사업을 골라 기부하도록 한 제도다. 공감대를 살 만한 사업만 잘 발굴하면 어떤 지자체든 기부금을 모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실제 총무성은 이번에 모금 실적과 함께 지정기부제 관련 통계를 상세히 소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지난해 지정기부제 방식의 기부가 가능한 지자체는 전체의 97.7%인 1745곳에 달했다. 기부금이 향한 사업도 다양했다. ‘아이·육아’ 사업에 1222억200만엔, ‘교육’ 사업에 672억100만엔, ‘지역·산업 진흥’ 사업에 622억7800만엔 등이 모였다.

심리적 만족감이 어떤 답례품보다 기부에 큰 동기 부여가 된다는 점이 일본에서 증명되면서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나타난다. 고향기부제 흥행이 기대치를 밑도는 가운데 새로운 방식으로 기부를 유도하려는 지자체가 속속 등장하는 것이다.

광주광역시 동구가 대표적이다. 지역 발달장애 청소년 야구단인 ‘이티(E.T) 야구단’이 민간의 후원 중단으로 활동이 멈춰 설 상황에 놓이자, 동구는 야구단 운영비를 고향기부제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구상했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7월 중순 모금을 시작하고서 3주 만에 100여명이 1200만원을 기부하는 성과를 냈다. 동구 관계자는 “고향이라는 개념도, 마땅한 답례품도 없는 상황에서 지정기부제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계속 순항할지는 안갯속이다. 동구가 민간 플랫폼을 활용해 모금한다는 이유로 행정안전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행안부가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 위탁해 운영하는 ‘고향사랑e음’이라는 플랫폼이 있음에도 동구가 민간 플랫폼을 선택한 건 ‘고향사랑e음’이 지정기부제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향사랑e음’은 기부하면 받을 수 있는 답례품만 나열할 뿐 지자체의 기금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동구는 현행법이 ‘정보시스템이나 정부 청사, 그밖에 공개된 장소’에서 모금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민간 플랫폼(공개된 장소) 활용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행안부는 ‘연간 500만원 이내’를 ‘주소지 이외 장소’에 기부하도록 한 법령상 규정이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없는 민간 플랫폼에선 지켜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정기부제를 반대하진 않는다”면서도 “기부 활성화 못지않게 건전한 기부문화 조성을 통한 제도 안착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현재 법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구실 삼아 지자체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지나친 소극 행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한 전문가는 “지방소멸 속도와 고향기부제 흥행 실적을 고려하면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이를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마저 옥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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