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사업에 도움주세요”…日, 고향납세 지정기부제 통했다
입력 : 2023-06-26 19:39
수정 : 2023-06-28 05:01
[‘고향납세 성장가도’ 일본을 가다] 
(상) 행정·민간 협업으로 지역정책 전환

사가현, 2014년 새 방식 도입 
아동 당뇨 치료법 개발에 접목
만족감 높여 기부 유도 성공적
시민사회조직 등 민간 역할 커
프로젝트 구상·직접 모금 가능
기부 ‘쑥’…다른 지자체로 확산
일본 사가현은 기부자들이 응원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콕 집어 기부할 수 있도록 한 ‘지정기부제’를 2014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다. 후루사토초이스 화면 캡처

고향사랑기부제가 예상외 흥행부진을 이어가는데, 제도가 규제 위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일본에서 본 고향납세는 ‘열린 제도’라는 인상이 강했다.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분명한 목적 아래 다양한 시도를 허용한 결과 지정기부제와 기업판 고향납세 도입, 민간의 적극적 참여가 가능했다. 사회적기업 공감만세가 이달초 진행한 일본 고향납세 선진지 연수에 동행해 취재한 내용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가정식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고향납세로 프로젝트를 응원해주세요.”

사가현은 2014년부터 지정기부제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고향납세를 모금한다. ‘결식아동 지원’ 등 기부자가 응원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콕 집어 기부할 수 있도록 한 것. 기부자는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이를 통해 지역문제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보고받고 보람을 느끼며 재기부한다. ‘기부’라고 이름 붙였지만 세제 혜택과 답례품만 강조하고 기부자의 심리적 동기 부여에는 큰 관심이 없는 우리 현실과 차이가 있다.

◆지정기부제 탄생 배경은=‘지역 투구게 보존에 고향납세를 하고 싶습니다.’ 사가현의 지정기부제는 우연히 들어온 민원에서 시작됐다. 사가현은 규슈에서 인구로나 면적으로나 최하위권이었고 특색 있는 답례품도 부족해 고향납세 모금이 쉽지 않았다.

당시 고향납세 업무를 담당하던 이와나가 코우조 전 현민환경부 부부장은 ‘원하는 사업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일본1형당뇨(IDDM)네트워크의 ‘아동 1형당뇨 치료법 개발사업’에 접목했다. 이와나가 전 부부장은 1형당뇨를 앓는 아이의 아버지로 당시 일본IDDM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치료법 개발의 필요성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치료법 개발 재원을 고향납세로 마련하자는 구상은 성공적이었다. 2014년 모금 개시 두달 만에 1300만엔이 걷힌 것이다. 지금까지 누적 모금액은 7억8900만엔, 종전에 봉사단체 성격으로 운영되던 일본IDDM네트워크는 임금근로자만 12명일 정도로 성장했고 현재 사가대학교를 비롯한 20∼30개 연구기관을 지원하고 있다. 특출난 답례품이 아니어도 기부자의 만족감을 높여 기부를 유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

이와나가 전 부부장은 “이 프로젝트로 ‘사가현은 일본 내 IDDM 거점’이라는 인식을 얻었다”면서 “특정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기부가 아니라 전국적 규모의 고향납세였기에 가능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민간 참여가 제도 핵심=사가현 지정기부제에서 주목할 점은 민간의 역할이다. 고향기부금 사용처 발굴과 배분을 지방자치단체가 도맡는 우리 실정과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사가현은 지역 내 사무소를 두고 상주 인력을 고용한 시민사회조직(CSO)이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면 해당 CSO가 직접 고향납세를 모금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기부자는 고향납세 플랫폼에서 ‘사가현 아동 1형당뇨 치료법 개발사업’ 등 응원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골라 기부할 수 있고, 사가현은 기부액에서 플랫폼 사용료 등을 제한 85%를 CSO로 전달한다. 대신 CSO는 고향납세를 활용한 실적보고서를 매해 공개해야 한다. 답례품 증정 여부도 CSO가 결정한다.

2021년 기준 사가현에 등록된 CSO는 일본IDDM네트워크 등 112곳. 이들이 2021년 모금한 고향납세 액수는 9억1000만엔이다. 2015년 9개 단체가 1억5100만엔을 모금한 것과 견줘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사가현미래창조기금의 ‘결식아동 지원사업’이 있다. 2017년 지역 저소득층 아이에게 건강한 끼니를 제공하고 식사 공간을 마련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해 단기간에 1400만엔을 모금했다. 어느 해엔 22명이 목표 금액 1000만엔을 순식간에 채우면서 모금이 조기 종료됐을 정도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의 참여가 뜨거웠다. 현재 이 사업으로 사가현 내 어린이 식사 공간은 80개까지 확충됐다. 푸드뱅크, 어린이 장학금 지원도 이 사업과 연계해 추진 중이다. 이밖에도 사가시 야마토초의 ‘가와카미 유대모임’이 추진하는 ‘고령자 이동지원 사업’과 피스윈즈재팬의 ‘사가 전통공예 지원 프로젝트’ 등도 유명하다.

◆지역정책 패러다임 전환=지정기부제는 현재 여러 지자체로 확산 중이다. 제도의 성과는 모금 실적 증가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지역 복지정책의 틀을 바꿨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종전의 정책은 행정이 주도해 만든 사업에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원을 나눠 투입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정기부제 도입으로 지역에서 필요한 정책을 지역주민들이 직접 찾아내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도시민의 기부금을 통해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사가현 관계자는 “고령화에 따른 인구와 세수 감소로 행정만으로는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고향납세는 민간과 행정이 협력하는 좋은 형태의 제도며, 국민이 유일하게 자신의 세금이 쓰일 곳을 지정할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사가현=양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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