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고향기부제로 재정주권 초석 놓아야

2023-06-21 11:00:08 게재
시행 첫해 고향사랑기부제 목표액은 얼마쯤 될까? 제도 시행 초기 많은 기초자치단체들은 1억~2억원을 모금 목표로 삼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3억~4억원을 기대하는 곳이 일부 생겼다. 지금 목표대로라면 광역자치단체까지 포함하더라도 243개 지자체 전체 모금액은 2000억원 안팎일 가능성이 높다. 연말 즈음 소득공제 수요가 몰리는 변수까지 고려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제도로는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렇게 모금된 돈을 잘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도 시행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사용처를 정하지 않은 지자체들이 부지기수다. 제도 시행 전 논의 기간이 충분히 있었고, 6개월의 시행 경험까지 더해졌지만 일선 지자체들은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는 행정안전부가 규제와 통제를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한 탓이 크다. 지자체들이 제도 활성화를 위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열악한 지방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제안됐다. 그런데 정작 지자체들의 목표를 보면 적게는 1억원, 많게는 10억원쯤 기부받아 주민들을 위한 민원사업에 쓰겠다는 수준이다. 이 정도 목표라면 굳이 이렇게 복잡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들게 만든다. 중앙정부가 특별교부세를 나눠주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내는 기부금에는 국가 세금의 성격이 포함돼 있다. 기부금 중 10만원까지는 전액, 그 이상은 16.5%를 감면해준다. 이는 고향사랑기부제에 국가재정을 재분배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얘기다. 우리보다 먼저 제도를 시행한 일본 사례에서는 이런 성격이 더욱 분명하다.

일본은 연간 고향세 모금액이 7조~8조원에 달한다. 많게는 수천억원을 모금하는 스타 지자체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일본의 제도에는 '재정주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국민들이 지정기부 방식으로 세금의 사용처를 결정하면, 국가와 지자체는 다른 조건 없이 그 사업에 돈을 내주는 방식이다. '세금을 내는 납세자가 사용처를 결정'하는 셈이다. 심지어 사용 주체가 반드시 국가나 지자체일 필요도 없다. 모금 목적이 국민 공감을 얻는다면 민간단체들도 기부금을 모으고 집행할 수 있다.

우리도 재정주권을 중심에 두고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지방분권을 하겠다면서 겨우 이 정도 재정 권한도 지방에, 국민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건 모순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향사랑기부제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혹여나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가 이런 이유 때문에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반기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런 의심이 단지 기우이길 간절히 바란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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